자존감 도서관/내면아이 알아가기

두려움과 고통을 직시하라, 끝까지 내려가기

웰빙팡팡 2022. 2. 20. 10:32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행복과 불행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고 기꺼이 생각하는 사람, 용감하게 배우고 두려움과 고통을 직시하며 자기 신념의 타당성을 검증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자신이 책임지기를 싫어하고 두려움과 잘못된 신념이 자신을 조종하게끔 내버려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배움과 책임에 전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임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에만 전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누구나 기꺼이 나설 때고 있고 몸을 사리는 때가 있죠. 자신이 몸을 사릴 확률이 50퍼센트 이상이라면 모든 면에서 발전이 별로 없을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면아이와의 배움에 열려 있을 때 발생하는 이로움보다는 자기 자신과 분리되었을 때에 입게 되는 손해가 더 클 테니까요.


기꺼운 자세란 무엇일까요? 스키 슬로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제 겨우 스키를 배운 사람을 스키 강사가 슬로프 정상으로 데려갔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경사가 가파른데 스키 강사는 안전하게 슬로프를 타고 내려갈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물론 그런 말로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죠. 자칫 다리가 부러질 확률은 언제든지 있습니다. 스키 초보는 슬로프를 내려다보고 겁이 납니다. 절대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당신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이 믿음을 시험해보겠다고 스키를 타고 내려가겠습니까? 아니면 도로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겠습니까?

두려움에 맞서보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은 스키 타는 법을 배웠습니다. 두려움에 맞설 마음이 없어서 스키를 타보겠다고 결심하지 않는다면 스키 타는 법은 절대 배우지 못합니다. 언제나 도로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바로 두려움을 다른 사람이나 물건에 떠넘기는 태도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스키 슬로프에서의 두려움을 직시하고자 했던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내려가는 리프트에 몸을 실었던 적도 얼마나 많았던가요? 배움의 의도 대신 자신을 지키려는 의도를 택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불안, 외로움, 고독, 두려움, 상처, 그밖의 어떤 불편한 감정을 기꺼이 직시할수록 그 감정을 헤치고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은 점점 더 빨라집니다. 이러한 감정들을 직시하고 배우기보다는 회피해버릴수록 궁지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이 길어질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과 신념에 과감히 도전하고 가장 고질적인 고통마저 기꺼이 직시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고 애정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걸까요? 그 답은 그 사람의 우선순위와 관계가 있습니다. 당신의 우선순위가 사랑을 주는 것이라면,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근본적인 욕망이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이미 그 길에 올라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꺼운 자세를 좌우하는 두 가지 요소는 '욕망'과 '신념'입니다. 하지만 자기 보호가 더 중요하다면 아무리 많은 책을 독파하고 별의별 워크숍에 참석해도 자신이 고착돼 있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책도 많이 읽고 치료도 열심히 받으러 다니고 워크숍을 전전하지만 자기 보호적인 행동 방식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들의 두려움이 욕망보다 크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들의 보호가 여전히 작용하는 탓에 진짜 바닥까지 내려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결국 바닥까지 내려가 모든 고통, 두려움, 외로움, 그리고 그동안 보호책을 강구하여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썼던 실패를 경험한다면 그 후에는 배움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고통, 두려움, 외로움, 실패를 피하고 싶은 욕망보다 커지려면 바닥까지 가봐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장하는 사람들은 치유하고자 하는 욕망, 사랑하며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왕성해서 기꺼이 성장 과정에 가담할 것을 서약하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바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한다고 말하는 그것을 얻기 위해 온전히 헌신할 때까지, 성공으로 가는 길에서 실패조차 기꺼이 감수할 때까지는 그것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모두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있습니다. 실패와 고통을 피할 것인가요, 아니면 치유와 성장을 통해 애정 넘치는 사람이 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