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도서관/내면아이 알아가기

내면어른은 누구일까

웰빙팡팡 2021. 11. 27. 20:45

우리의 어른 부분은 스무 살이 되면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 자신의 '아이' 부분과 '어른' 부분을 함께 발달시키게 됩니다. 내면어른은 의도와 행동을 주목하는 '선택권자'입니다. 오랜 상처를 치료하고 자신의 내면아이를 사랑해주기로 결심하는 것은 내면어른의 소임입니다. 내면어른이 내면아이를 지속적으로 알아 가고 사랑하기로 결심한다면 그 아이는 자연스레 자신을 열게 되어 있습니다.

 

내면아이를 회피하는 무심한 내면어른

사랑 없는 어른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경험과 느낌을 차단하고 내면아이가 느낄 슬픔과 외로움 등을 책임지지 않기로 선택합니다. 아이가 느낄 기쁨에 대한 책임마저도 회피하기로 선택합니다. 이러한 어른은 아이에게 과제, 규칙, 의무를 앞세우고 면박을 줍니다. 사사건건 비판하고 판단이 앞서며 아이를 깎아내리고 창피를 주면서 심하게 통제하려 듭니다. 또한 아이에게 자신을 희생하는 것만이 사랑이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이기적인 짓이라고 말합니다. 사랑 없는 내면어른은 다음과 같은 규칙과 잘못된 믿음을 내면아이에게 지속적으로 강요합니다.

 

 

니 감정에 대해 말하지 마

착하고 올바르고 완벽하고 강해져야 해

이기적으로 굴지 마

인생을 즐기지 마 그러려면 너무 돈이 많이 들어

마음을 열지 마 사람들이 너한테 상처 줄 거야

'겉모습'은 좋게 보여야 해

 

 

이는 사랑도 없으면서 권위적인 내면어른의 목소리입니다. 한편, 사랑없는 어른이 허용적이게 된다면 그것 역시 내면아이를 힘들게 합니다. 지나치게 관대한 것을 넘어서서 방치하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허용적 어른은 내면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에 그 아이가 남들을 통해 필요를 채우게끔 방치합니다. 내면아이가 남들을 때리고 거짓말하고, 모욕을 주며 나아가 살인까지 휘두를 정도로 파괴적인 모습으로 변해도 그저 허용할 뿐입니다. 

 

권위적 내면어른이나 허용적 내면어른이나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졌다는 느낌을 내면아이에게 남긴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자기가 못됐고, 잘못했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고, 결점이 많고, 무의미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낳습니다. 

 

사랑 없는 내면어른은 대개 우리의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 선생님 등의 권위적 존재들의 사랑이 없는 모습 그대로를 따라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부모나 양육자가 우리에게 대했던 방식 그대로 자신의 내면아이에게 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는 내면어른이 권위적이냐 허용적이냐는 당신의 부모나 양육자가 당신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마 당신이 어렸을 때 당신의 부모나 양육자로부터 들었던 말들을 무의식적으로 항상 내면아이에게 하겠죠.

내면어른의 용기

사랑하는 내면어른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직시하며 감히 알고자 하는 용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깊고 오래된 상처를 치유하고 잘못된 믿음을 진실로 바꿀 수 있는 우리 자신의 긍정적인 한 부분이죠. 당신이 만일 사랑하는 내면어른이 되어서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잘 보살펴주기로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럴 역량이 당신과 나 모두에게 있어요. 우리는 사랑하는 내면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내면어른은 내면아이에게 권위적이지도 않고 허용적이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방식을 따르라고 강요하거나 혹은 방치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어른은 아이의 행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물어봅니다. 아이가 그렇게 느낀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러한 감정에 대해 배우겠다는 태도로 행동합니다. 아이의 감정을 귀담아듣고 이해하기 위해 함께 있어주며 언제나 진실을 말해줌으로써 내면아이가 모든 일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당신에게 '일도 똑바로 못하는 멍청이'라며 모욕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만일 내면어른으로부터 비난을 듣고 자랐다면 이 '멍청이'라는 표현을 아주 민감하고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맞아. 난 멍청이였지. 한심하기 짝이 없어' 라며 잘못된 믿음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사랑하는 내면어른이 한 발짝 들어와 내면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화내고 비판적으로 구는 건 너하곤 상관없어. 네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데. 자기 심사가 꼬이니까 다른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것뿐이야. 그건 네 책임이 아니야. 그러니 걱정 마. 내가 우리 둘을 위해 이 상황을 잘 처리할게"

 

 

그러고 나서 내면어른은 내면아이를 위해 행동에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직장 상사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화나신 거 압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제가 열심히 더 배우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런 바보 취급당하는 건 상당히 불쾌하군요. 나중에 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신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배울 자세가 아니라면 내면어른은 그 자리를 떠날 것입니다. 내면아이가 그래도 여전히 모욕감을 느낀다면 내면어른은 아이의 감정에 귀기울이고 그러한 감정의 근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내려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면어른은 진실을 말함으로써 내면아이의 잘못된 신념 체계를 바로잡는 선생님입니다. 

 

 

우리가 사랑 없이 스스로를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의 내면아이에게 사랑하는 내면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은 자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의 내면아이를 다루는 방식이 인생의 나머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사랑 없이 내면아이를 다룬다면 물질 중독이나 과정 중독에 빠지게 되고, 두려움, 불안, 우울, 고통, 공허함, 낮은 자존감, 끔찍한 외로움, 나아가 신체와 정신의 병까지 생기죠. 정신 질환으로 얼마나 혹독한 고통을 겪는가는 내면아이와 내면어른이 분리되어 있는 정도와 직결됩니다. 

 


 

오늘 이렇게 다짐해보세요. 이제부터 나는 어떤 상황도 피하지 않고 이 작고 상처 받은 내면아이를 지켜줄 든든한 내면어른의 역할을 하기로요. 이것이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의미에요. 나 자신을 지켜준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순간부터 나는 사랑을 줄 든든한 내면어른이 되기로 결심하는 거에요. 내면어른의 결심만이 변화의 첫걸음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