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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하는 자아

웰빙팡팡 2021. 11. 29. 12:18

내면아이와 내면어른의 분리에서 자아(ego)가 태어납니다. 당신은 아주 어렸을 때 최초의 분리를 경험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과 처음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바로 엄마이죠. 우리 사회에서는 대개 출산 직후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신생아실로 옮겨지면서 분리됩니다. 아이는 혼자 이 세상을 상대해야 하죠.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오더라도 혼자 요람에 누워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후에도 다른 거부와 분리가 이어집니다. 엄마가 젖을 늦게 준다든가 하는 사소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사랑, 긍정, 인정을 필요한 만큼 받지 못하고 자랐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러 형태로 부모와의 분리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서 거부당하고 버림받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거나 나쁘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서 그렇게 됐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자아는 바로 이 시점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아주 작고 상처 입기 쉬웠던 때 경험한 거부와 외로움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토록 외로워하는 내면아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왜곡된 자기, 즉 '자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 자아가 외로움의 고통에서 우리를 보호해주고 그렇게나 필사적으로 얻고 싶어 했던 사랑을 가져다주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성장하면서 버림받은 경험이 내면화될수록 우리의 자아는 점점 더 강해지고 내면아이와 내면어른의 분리는 점점 뚜렷해집니다.

 

 

자아의 목적은 우리를 외로움에서 보호하고, 사랑을 주기보다는 받는 것입니다. 자아는 내가 주체가 되어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비판적이고, 남의 잘못을 꼬집고, 수치심을 조장하며, 경악하고, 화내는 우리의 일면이 바로 자아입니다. (여기서의 자아는 프로이트의 자아와는 다릅니다. '자아를 계발한다'는 말의 자아와는 다릅니다.)

 

 

사랑 없는 내면어른과 버림받은 내면아이의 모습으로 자아는 자신을 드러냅니다. 자아는 늘 못마땅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죠.

넌 못해

진작 했어야지

널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

네가 그 사람들 안중에 있기나 해?

넌 절대 제대로 못할걸

 

거부와 버림받음을 피하고 싶다는 소망에 사람들을 묶어 두는 것이 자아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내면의 분리야말로 자아를 낳고 이별, 버림받음, 거부, 외로움을 경험하게 하는 진짜 원인입니다. 바로 이 분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 스트레스는 심지어 우리 몸을 병들게 하죠. 신체와 자아가 너무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아는 우리 몸에 대한 잘못된 신념을 심어줍니다. 그렇게 우리를 계속 통제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또한 이런 제어로 인해 자존감도 낮아지죠.

 

자아가 가져다 주는 잘못된 신념들

불안, 상처, 두려움을 일으키는 신념은 어떤 것이든 잘못된 것입니다. 슬픔은 진실을 목격하거나 경험할 때 생기지만 상처, 불안, 두려움은 우리의 잘못된 신념에서 옵니다. 우리는 대부분 어렸을 때 사실이 아닌 신념을 선택했고 그 신념이 고통을 낳았습니다. 

 

 

난 못생겼어

난 멍청해

아무도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않아

 

 

따위의 신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신념들이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입힙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어떤 신념이 나를 아프게 하면 그 신념은 무조건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날 아프게 하고 그 신념이 날 위해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자아의 신념이며 잘못된 신념이라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아의 신념은 모두 잘못된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거부당하고 버림받을까 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아가 만든 잘못된 신념일 뿐입니다.

 

영유아기 때 우리는 주로 사랑을 받는 데 관심을 쏟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면 아이는 죽어버리기 때문이죠. 진정한 성장은 언제나 사랑을 얻고자 하는 결핍 상태에서 자신과 남들에게 사랑을 줄 줄 아는 상태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은 고통과 수치심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 경험한 트라우마, 학대가 낳은 슬픔을 성공적으로 치유할 때에만 가능하죠. 그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아의 잘못된 신념들을 탐색하고 무너뜨려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내면어른의 진짜 소임이 드러납니다. 자아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왜 그렇게 믿고 느끼는가를 배우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내면어른의 소임입니다. 이 내면어른은 자아가 끊임없이 말하는 잘못된 신념들에게 대해 내면아이에게 그것이 아닌 진실을 가르쳐 줍니다. 그럴 때 자아는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내면아이와 내면어른은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완전한 이 내면의 연합은 마치 깨달음과 같고 우리는 누가 그러한 깨달음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아의 목소리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지만, 그 목소리에 휘둘릴 것인가 아닌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아는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러한 선택은 한결 쉬워지죠. 진실은 우리가 더는 자아의 신념에 지배당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아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하죠.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우리가 내적으로 성장해서 내면의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아가 통제권을 상실하거나 스스로 죽어버릴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성장하고 마음속의 내면아이와 사랑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면 자아는 더욱더 용을 쓰며 더 많은 거짓말을 늘어놓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면 돼요. 사랑하는 내면어른의 끊임없는 양육의 힘이 결국 자아의 이런 두려움도 사랑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당신도 할 수 있고 나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