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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아이 만나기가 두려운 이유 (1) - 분노

웰빙팡팡 2022. 2. 16. 13:24

어떤 사람들은 내면아이와 유대를 맺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고 인생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일인지를 이해하자마자 바로 본격적인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관련된 책을 읽고, 매일매일 내면대화를 연습하며, 내면아이가 보내는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러면서 내면아이를 위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시작하고 급속도로 진전을 보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내면아이를 사랑하는 내면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리라 다짐하고 약속을 철저히 실행합니다. 

 

그렇지만 다짐을 하고 실천에 옮기기를 유독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들은 매주 진료실을 찾지만 늘 답보 상태에 머물며 전과 똑같이 불행해합니다. 혹은 그저 심리 치료사에게 잘 보이려고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주장하지만 머지않아 실제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음이 드러납니다. 실질적인 치료는 전혀 이루어지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내면대화를 실천하더라도 진정한 공감이나 배움을 향한 진실한 의지 없이 그러한 대화를 하나의 연습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배움과 자신에 대한 책임에 열려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는 걸까요?

 


본래 인간은 몰두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이 답보 상태에 갇혀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삶의 어떤 부분에 도사린 두려움과 고통을 피하는 데 몰두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두려움과 고통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감추고 덮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통, 두려움, 신념이 깊이 파묻혀 있는 데다가 결코 드러나지 않거나 의식되지 않게끔 제동 장치가 걸려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감춰진 고통과 슬픔을 파헤치고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쪽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우리의 혼란을 깔끔히 정리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답보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힘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다만 그 힘이 지금은 방향을 잘못 잡았을 뿐이죠. 답보 상태를 돌파하려면 아픔과 기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쏟았던 에너지를 자기감정을 책임지기 위한 에너지로 바꿔야 합니다. 자신의 고통, 두려움, 신념에 대해서, 나를 기쁘게 하는 것에 대해서 확실히 배우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이 같은 다짐은 우리의 내면어른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의도에 관한 선택은 어디까지나 내면어른의 몫이기 때문이죠.

 

버림받은 내면아이는 이런 선택을 두려워하며 여러분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받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 위하여 맹장 수술이 꼭 필요하다면 아이의 보호자는 수술을 결심하야만 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여러분도 극도로 겁에 질리고 분노에 사로잡힌 아이를 붙들고 꽤 오랜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동시에 내면아이가 잘못된 정보와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도록 옆에서 꼭 지켜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끌고 나가는 것은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배움과 자신에 대한 책임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 걸림돌이 될 만한 두려움과 잘못된 신념은 매우 많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면 그 걸림돌을 자각하고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게 그중 주요한 것들을 이번 포스팅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분노입니다.

 


분노에 대한 두려움,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는 법

우리 중 상당수는 어렸을 때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 친척, 교사, 또래 친구 때문에 아픔을 겪어보았습니다. 신체적으로, 성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학대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렸기 때문에 스스로 보호할 힘이 없었을 뿐 아니라 대개의 경우 분노를 표현해서는 안 되었죠. 심하게는 화를 내고 징징거렸다는 이유로 학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표출하지 못한 분노와 노여움을 버림받은 내면아이에 안에 담아놓고 있습니다. 어린 우리를 저버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내면아이가 혼자 쩔쩔매도록 나 몰라라 저버린 우리 자신에 대한 분노가 그렇게 고여 있는 것입니다. 내면아이와 함께 배우기로 마음을 열 때에는 반드시 이러한 분노와 노여움을 경험하고 표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내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분노를 심판하며 이런 식으로 감정을 품는 건 잘못되고 나쁜 일이라고 내면아이를 설득하려 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심판을 당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어렸을 때 화를 냈다가 더 안 좋은 일만 당했던 것처럼 화를 내면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화가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라고 믿는지도 모릅니다. 자기들이 근본적으로 화가 나 있고 그 분노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화를 풀 수 없을까 봐 두려운지도 모릅니다. 일단 화를 내면 주체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래서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어쩌면 누구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를까 봐 두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자기에게 한계를 정해주는 어른이 없이 버림받았던 아이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그러한 분노는 적절히 다스리지 못한 채 억압할 때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그런 사람들도 일단 사랑하는 내면어른과 접촉하면 해롭지 않은 방법으로 분노를 푸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판단할 것이며, 화를 드러내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이고, 일단 분통을 터뜨리면 걷잡을 수 없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으면서 그러한 믿음이 타당한지 아닌지 시험해볼 마음조차 없다면, 그 사람은 답보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내면대화를 시작하면 내면어른에게 버림받은 내면아이의 분노부터 마주합니다. 내면아이의 분노는 몇 주나 계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고 내면아이에게 분노를 표출할 여지를 충분히 주세요. 사랑하는 내면어른은 내면아이의 분한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위로와 지지를 아끼지 않습니다.  

 

 

 

 

분노를 내면에 쌓아두고 표출하는 것을 극도로 제어했던 저는 종종 자해를 했습니다. 그 즉시 물밀듯이 밀려드는 좌절감, 죄책감, 수치심에 극단적인 생각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분노는 나쁜 것'이라 생각했고 이 감정을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첫 상담을 받고 저의 심리 상태를 마주했을 당시에 경험했던 분노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땐 1분 1초가 지옥 같았습니다. 머리는 터져버릴 것 같았고 공황발작은 계속되었지요. 스스로를 향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죽고 싶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손목을 그어버릴 것 같아서 저는 그냥 밖으로 나가 무작정 걸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매일같이 산 주변을 돌며 거친 욕을 했습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내 양육자들,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부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선 책장에 있는 책들을 다 끄집어내서 찢어버렸습니다. 내 부모의 이름이 적힌 모든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버렸지요. 

 

그렇게 분노를 표출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몹시 지치고 힘들어서 제대로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대해서 두렵기도 했지요. 하지만 저는 제 안에 쌓여있는 분노를 더 이상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언젠가는 이것도 다 지나갈 것이라고 믿고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그리고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서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물건들을 던지고 내 몸을 아프게 하는 방법만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노를 쌓아만 두는 청소년 상담자에게 "총으로 몬스터를 쏴 죽이는 게임을 해. 스트레스도 풀리고 얼마나 좋니"라고 말해주었다던 상담가 선생님의 말을 듣고 저도 슈팅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RPG 게임을 하면서 몬스터들을 마구 죽이기도 했는데 묘하게 분노가 풀리더군요. 유튜브로 UFC나 복싱 경기를 즐겨보기도 했습니다. 복싱 글러브와 탭볼 세트를 사서 땀이 흐를 정도로 탭볼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노트에 욕이 절반인 제 생각들을 1시간 가까이 휘갈겨 쓰기도 했습니다. 욕은 하면 안 되고 이런 상스러운 영상들도 보면 안 되며 게임도 안된다고 들으며 자라왔던 저에겐 아주 큰 도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거친' 방법들이 내면의 분노를 흘려보내는 데 도움이 되더군요. 내 뺨을 치는 것보단 총으로 몬스터 하나 죽이는 게임이 훨씬 안전하잖아요.

 

그동안 제 안에 분노는 얼마나 쌓여있던 걸까요. 당시에 제 분노를 표현하자면, 마치 20층짜리 건물이 작은 병 하나에 압축된 것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 분노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 온갖 책도 찢고, 몬스터가 피가 튀기며 죽는 게임도 하고 그러다 몸이 지치면 반신욕을 하며 몸의 긴장을 덜어냈습니다. 분노를 너무 크게 느낄 때엔 베개에 머리를 박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혹은 베개를 주먹으로 퍽퍽 쳐댔지요. 뭐 어떻습니까.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내 몸에 멍이 드는 것도 아닌걸요.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제 내면아이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더군요. 그 아이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를 표출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나니 우리는 서로의 안부도 물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내면의 분노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분노를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나를 사랑해줄 힘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해 분노를 마주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이 감정을 받아들일 겁니다. 제 내면아이와 함께 배울 것입니다. 나쁜 것도 아니고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일도 아닙니다. 정말 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시험해볼 마음만이라도 괜찮습니다. 당신과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