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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조절이 안돼요

웰빙팡팡 2023. 6. 18. 10:09

자존감과 감정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살면서 겪는 문제 대부분은 감정과 연결돼 있고,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조절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도 하죠. 그러나 그 중요도에 비해 의외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조절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합니다.

 

제가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가 주로 제게 질문했던 것은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어요?"였습니다. 그럼 잠시동안 가만히 내 감정을 되짚어보죠. 그런데 이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50분의 상담이 끝나면 두통이 밀려오고 체력이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감정을 표현하는 일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습니다.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를 떠올리는 것이 싫었어요. 회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꽤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감정은 본능이고 말로 표현하는 것은 이성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감정에서 아직 허우적대는 사람은 그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겠지요. 본능의 영역에 있는 사람에게 이성의 영역에 있는 답을 요구하니 당연히 두통이 올 수밖에요. 정말 힘들 때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잖아요. 감정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온 다음에야 우리는 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겁니다.

 

감정 조절과 자존감

 

어떤 감정이 행동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자존감의 높고 낮음도 결정됩니다. 그래서 감정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죠. 감정은 배가 고프거나 졸린 것처럼 본능의 영역이라고 말했죠. 따라서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즉, 무의식중에 느낍니다. 하지만 배가 고프다고 정크푸드만 먹으면 비만이나 당뇨, 고혈압이 생기고, 지나치게 많이 자면 몸에 해롭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지만 적당히 조절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적당한 게 좋습니다. 문제는 적당히 화를 내고 싶은데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반대로 아예 표현을 못할 때입니다. 이러면 내 마음이 내 의지대로 조절되지 않으면서 자존감의 구성 요소인 '자기 조절감'이 떨어집니다.

 

감정 폭발 후 밀려드는 우울감

감정이 격앙되면 어떻게 될까요? 뇌는 위기를 감지합니다. 그러면 공격성 신경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이 샘솟고, 활동성 물질인 도파민은 본능 중추로 모여듭니다. 동시에 이성의 뇌인 전두엽은 스위치를 내립니다. 이때 뇌는 긴급한 상황임을 인식해서 이성보다 생존을 우선시하게 되고, 뇌의 가장 깊은 곳인 본능의 뇌인 변연계가 깨어납니다.

 

뇌의 이런 신호는 곧바로 신체에 전달됩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도 가빠집니다. 이런 신체 변화를 다시 뇌가 감지합니다. 뇌는 심장이 빨리 뛰는 것으로 봐 위기가 온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몸에 신호를 전달합니다. 이렇게 뇌는 몸을 깨우고 몸은 뇌를 다시 깨우는 도르마무 과정이 시작되죠.

 

여기서 적절히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몸의 긴장도는 점점 강해지고 최고점에 달하면 펑 하고 터져버립니다.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집니다. 아드레날린이 최고치를 찍고 도파민 활동이 극대화되는 순간입니다. 뇌와 몸의 긴장도가 최고점을 찍고 나면 뇌는 급격하게 우울감에 빠져듭니다. 뇌와 신체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휴지기를 갖는 것입니다. 그런 극도의 흥분이 계속된다면 인간은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뇌는 재빨리 아드레날린 분비를 중단시킵니다. 이때 인간은 심한 무기력과 무능감, 자책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흥분기 뒤에 나타나는 우울기. 이것은 일종에 뇌가 만들어낸 안전장치입니다. 

 

4년 전 병원에 가서 내 자신이 지금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라는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 저는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자해를 했습니다. 제 뺨을 때리거나 주먹으로 벽을 치는 등 표현도 못할 엄청난 감정을 다루지 못해 제 몸을 괴롭혔지요. 그리고 그 후에 밀려드는 자책감과 우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습니다. 불을 다 끄고 문을 잠근 채 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는 죽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흥분기 뒤에 오는 극도의 우울기였습니다.

 

 

감정 조절이 특히 안 되는 사람들

첫째, 행동화가 습관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뇌가 흥분할 때마다 손과 발, 성대까지 함께 흥분합니다. 감정이 흥분하면 뇌의 가장 깊은 곳의 감정 중추가 항진됩니다. 그러면 신체는 감정 중추에 몰려 있는 활성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쓰기 시작합니다. 감정이 격앙됐을때 몸을 움직이면 소뇌가 활성화되면서 감정 중추는 안정을 되찾는 것이지요. 심호흡을 하거나 혼자 주먹을 휘두르거나 산에 올라가 소리를 지르면 감정이 풀리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문제는 이 몸동작이 과격해질 때입니다.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자신 또는 타인을 다치게 하는 행동화가 습관이 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제가 주먹으로 벽을 연이어 때리면서 양쪽 손등에 시퍼런 멍이 들었던 일,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고 제 뺨을 때리던 일이 생각나네요. 

 

둘째,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뇌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영역을 해마라고 부르는데, 과거 기록은 해마의 정보창고에 차곡 차곡 쌓여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마는 감정 중추인 편도핵에 붙어 있기 때문에 기억과 감정이 늘 함께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들은 과거의 감정 또한 아물지 않은 상태입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예민하게 반응하죠. 극심한 공포와 관련된 상처가 있는 사람일수록 불안은 수시로 올라옵니다. 화가 덜 풀린 사람이 관계없는 엉뚱한 사람 앞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저는 지금 원가족과의 관계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가족과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상당히 불편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제 옆에 있는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죠. 그것도 갑자기요. 잔뜩 예민한 상태가 되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속상한 일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셋째, 감정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웬만해서는 화도 내지 않고, 미움도 없으며, 슬픔도 부정합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것을 나약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엄마니까 힘들어도 참아야만 한다는 초보 엄마, 내가 선택한 길이니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신입사원, 시험에 합격하려면 공부에만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험생 들이 이런 경우입니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에 죄책감을 갖습니다. 감정을 안 느끼려는 행위는 '다이어트를 해야 하니 배고프지 말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능이 있는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조현병을 앓는 언니와 희귀 신장질환을 앓는 엄마, 그리고 어디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아빠를 보면서 제 자신은 힘들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제가 이 모든 것을 다 짊어져야 한다고 여겼지요. 그들이 나에게 어떤 요구를 해올 때 그것이 부당하게 느껴지더라도 무조건 그 요구를 들어줘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꼈어요. 제멋대로이면서 저를 시기하기도 하고 무조건 의존하기도 하면서 언니로서의 깊은 존중과 대접을 받으려는 그런 언니와, 내 인생에 아픈 언니를 짊어지고 살기를 요구하는 엄마, 그리고 애잔한 마음에 용기를 내서 관심을 자꾸 표현하려는 내게 시시때때로 무시와 조롱을 일삼던 아빠. 저는 분명히 이들 사이에서 힘들었을 텐데 당시에 '다들 이렇게 살아'라는 말을 하면서 힘든 감정을 거부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감정 조절이 안되는 모든 부류에 저는 속해있군요.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질러댔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감정 조절을 못하는 사람들은 억압과 폭발만 반복하게 됩니다. 감정을 누르려고 꾹꾹 참다가도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게 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되어 버리는 거죠. 

 

 


 

다음 포스팅에서는 그렇다면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모든 치료의 첫 번째는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고 용기를 내서 들여다보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4년 전보다 저는 지금 제 자신을 잘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제 모습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주변과 나 자신을 해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지요. 그래서 지금은 화가 나도 예전만큼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지 않습니다. 대신 이성의 영역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지요. 사실 생각만큼 잘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그 마음입니다.